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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난 말기암 환자다" 자전거 타고 소문내러 가는 남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5. 2. 21:50

"癌이 고맙다" 올해 환갑 맞은 김선욱씨.

재미라곤 없이 죽을 힘 다해 산 사람들

살 만해지면 나처럼 암 걸리더라…나도 이제서야 나만의 삶 찾아.


前남편 14년 병수발했던 아내, 또…

사별 후 재혼했는데… 저주받은 느낌. 폐인처럼 집에만 있던 남편한테 퇴직 후 자전거 여행 약속 지키라 했다.


국내 일주 마치면 일본으로 호주로, 한라산 정상까지 6개월간 전국 일주.

의족달고 마라톤 뛴 캐나다 테리 폭스처럼 후원자 모아 암 환우 재단 만들고 싶어.


"예, 제가 폐암 4기입니다." 그는 자신의 병명을 무슨 고교 졸업기수 말하듯이 했다. "아내가 나더러 '암 환자인 것이 자랑이냐'고 합니다. 사람 만날 때마다 '폐암 4기'라는 걸 먼저 말하니까요." 그는 암을 감추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암에게 감사한다" "암은 내 친구"라고 말한다. 올해 환갑을 맞은 김선욱은 이제 곧 그 '감사하는' 암과 함께 전국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임진각에서 출발해 강원도 고성으로, 이후 한국을 지그재그로 누벼 6개월간 총 7000km 거리를 두 바퀴로 밟을 계획이다. 이 대장정에 그의 아내 박재란(56)이 따라 나섰다. 두 사람 모두 중학생 때 이후 자전거는 처음 타 본다. 전국을 다니며 암 환우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말기암 환자인 나도 이렇게 밝게 사니까 용기를 내라"는 메시지를 전할 생각이다. 7주째 자전거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부부를 지난 23일 서울 한남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자전거 타는 데 트레이닝이 필요합니까.


"이제 막바지입니다. 7주간 매일 2시간가량 자전거 훈련을 받았어요. 제가 스키 강사 자격증이 있을 만큼 스키에 자신이 있는데, 처음에 레슨을 잘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전거도 전문가로부터 레슨을 받고 있는 것이죠."


호주에서 오랜 이민생활을 했던 그는 슬로프가 아닌 설산(雪山)에서 스키 타는 것을 즐겼고, 그런 와일드 스포츠에서 일종의 '참선'을 깨달았다고 했다. 지금 그는 자전거 위의 명상을 앞두고 있다.



폐암 말기 환자인 김선욱(오른쪽)은 침대를 박차고 나와 씩씩하게 살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가 불치병 환자라는 걸 알 수 없었다. 그는“6개월간 자전거를 타면 엄청나게 건강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전국 자전거 일주에 아내 박재 란이 동행한다. /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자전거 여행은 언제 떠납니까.


"28일에 발대식을 합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발대식을 해야 책임감도 생기고 각오도 다질 것 같아서요. 그리고 5월 1일 오전에 임진각에서 떠날 계획입니다."


―두 사람만 가나요.


"로드 매니저와 여행작가가 각각 1명씩 차를 타고 따라올 계획입니다. 이번 여행을 다녀와서 책을 낼 예정이거든요."


그는 이미 자전거 여행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홈페이지 이름은 'cycling4cure.com'. 치유를 위한 자전거 타기를 뜻한다. 이 홈페이지를 통해 각 구간을 자전거로 함께 탈 사람들도 공개 모집하고, 1km에 얼마씩 후원해 줄 사람들도 모을 예정이다. 그는 "소원 같으면 한 10만명쯤 후원회원을 모아서, 그들로부터 1km에 10원씩 1일당 총 7만원씩을 모아 '랜스 암스트롱 재단' 같은 암 환우 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어떻게 말기암 환자가 자전거 국토 일주를 계획하게 됐습니까.


"아내와 예전부터 '퇴직하면 자전거로 세계일주 해보자'고 말해 왔습니다. 그때는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유럽부터 자전거로 일주할 계획이었어요. 그러다가 덜컥 암에 걸린 것이죠. 항암치료를 받고 나서 아무런 의욕도 없이 집에만 있다가 어느 날 아내가 '여보, 우리 자전거 타기로 한 것 지금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겁니다."


그는 2010년 11월 11일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그보다 한 달 전쯤인 10월 18일 출근길에 체한 것처럼 명치가 묵직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병원에 가보니 위산이 역류한 것 같다며 소화제를 처방해줬다. 그러나 묵직함은 사라지지 않았고 너무 힘들어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심장 판막에 물이 찬 것을 빼내는 수술에 이어, 그는 곧바로 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암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데, 영화에서처럼 비장하지도 않더군요. 그저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폐암 4기입니다'라고 무미건조하게 말하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요. 말기 암이어서 수술을 할 수 없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며 그 후유증에 대해 설명하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더라고요. 꼭 절벽에서 느린 속도로 떨어지면서 허우적대는 느낌이었지요."


―지금 표정이나 낯빛은 전혀 환자 같지 않은데요.


"암에 걸리면 맨 처음 패닉(panic·공황)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는 디프레스(depress·우울)가 오지요. 그리고 나면 컴프로마이즈(compromise·체념)의 단계가 됩니다. 이 체념 단계가 매우 힘듭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할 수 없는 상태예요. 항암치료를 받으면 신경이 죽어서 입맛이 사라지지요. 그러면 아무것도 먹기 싫고 먹지 않게 되니 자연스레 힘이 빠집니다. 그럴 때 남는 건 오로지 의지뿐인데, 그 의지마저 놓치면 그저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이죠."


―어떻게 의지를 되살려냈습니까.


"아내의 권유로 조금씩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작년 3월쯤이었는데, 산책하다가 언 땅에서 새싹이 솟는 것을 발견하고 큰 깨달음과 희망을 얻었습니다. 고통 뒤에는 반드시 평안이란 대가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암 선고를 받고 얻은 공포가 크면 클수록 그 뒤에 찾아오는 평안도 크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러다가 북한산 등반을 가게 됐는데, 그때 아내가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두 사람은 2007년 결혼했다. 김선욱은 초혼이었고, 박재란은 사별 후 재혼이었다. 특히 아내는 전 남편의 당뇨병을 14년간이나 수발했던 경험이 있다. 그녀는 "새로 만난 남편마저 말기 암 판정을 받았을 때 솔직히 저주받은 느낌이 들었다"면서 "나는 남편 병 수발 들어야 하는 운명인가 하는 생각에 무척 괴로웠다"고 말했다.


―처음엔 자전거로 미국 횡단을 하려고 했다면서요.


"애초 계획은 2014년에 우리 둘이서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2014년엔 살아 있을 확률이 10%밖에 안 된다고, 살아 있을 때 국내 여행이라도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미국을 미루고 일단 한국부터 다니기로 한 거죠. 하하하."


두 사람은 10월 31일 제주도 한라산 정상에 오를 때까지 6개월간 자전거로 전국을 누빌 계획이다. 시속 10~15㎞의 속도로 하루 50㎞씩 페달을 밟을 예정이며, 가능한 한 숙박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텐트에서 야영을 할 생각이다. 부부는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기 때문에 웬만한 기상악화가 아니라면 텐트에서 자고, 정 힘들 땐 찜질방을 이용할 생각"이라고 했다.





―지금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나는 의사에게 내 암이 어디까지 전이됐는지, 크기가 얼만한지 일절 물어보지 않습니다. 종양의 크기를 안다고 해서 도움되는 일이 있을까요? 병세를 안다 한들 의사와 나 사이의 의학적 지식 차이를 줄일 수도 없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긍정적인 생각뿐이에요. 사람들은 이성과 감성이 일치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나는 문제 없다는 감성과, 내가 암 환자라는 이성이 일치하지 않는 거죠. 물론 어렵지만, 나는 이성도 감성도 내겐 아무 문제 없다는 식으로 일치시키려고 노력합니다. 2014년에도 제가 살아 있을 확률이 10%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 만약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내게는 10%의 삶이 남은 게 아니라 여전히 100%의 삶이 남아있는 거죠."


그는 지난 3월 9일 서울대병원에서 운동부하 검사를 한 결과 체력이 167와트(watt)로 나왔다고 했다. 60세 남성 평균 체력의 139%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난 18일 다시 운동부하 검사를 했을 때, 이 수치는 201와트로 증가했다. 병원 사람들이 "무슨 암 환자의 체력이 날로 좋아지느냐"며 놀라더라고 했다. 그는 "암은 의사가 20%를, 80%는 본인의 의지로 고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자전거 때문에 직장도 그만뒀다면서요.


"주한 스리랑카 대사관 노무관으로 일하던 것을 2월 말에 사직했습니다. 자전거 여행 때문이지요.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 인생을 막살아왔던 것 같아요. 제 첫 직장은 일본 무역회사의 한국지사였어요. 이후에 카펫이며 가구 같은 이른바 '호화사치품' 수입업을 해서 돈도 꽤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5공화국 정권이 이런 업태에 철퇴를 치는 바람에 다 그만두고 호주 이민을 갔습니다. 그때 동업자에게 크게 사기도 당했지요. 호주에서 건물 청소도 하고 불법체류로 일하면서 다시 일어섰는데, 그때 사실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게 뭡니까.


"바로 펀(fun)이라는 거예요. 외국 생활하면서 외국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면서 인생에서 재미가 가장 우선이란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사실 지금 암도 '펀'이 없으면 이겨내기 어려울 겁니다. 제가 만들어 낸 말이 있는데, fun에다가 암(cancer)의 c, 그리고 tion만 붙이면 기능(function)이 됩니다. 재미가 있어야 기능이 된다는 거죠. 인생을 너무 바쁘게만 살고 사람을 볼 때 손익득실만 따지면서 살다 보니 펀도 없고 한번도 내 자신을 돌이켜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 점에서 암에게 감사할 일이죠."


―감사하다뇨.


"암 때문에 내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됐으니까요. 내면을 돌이켜보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 삶을 살 수 있게 됐으니까요. 이제 저는 사람을 볼 때도 장점부터 먼저 보려고 합니다. 암에 걸리기 전보다 훨씬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 됐어요. 암에 걸려서 충격을 크게 받는 사람일수록 뭔가 이뤄놓은 게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제까지 재미라곤 없이 죽을 힘을 다해 살았고, 살 만하니까 암에 걸린 거죠. 그러니까 좌절도 큽니다."


―자전거 재단을 구상하고 있다면서요.


"골육종으로 다리를 잘라낸 뒤 의족을 달고 마라톤을 한 캐나다의 테리 폭스라는 사람이 있죠. 이 사람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암 환자들을 위해 마라톤을 하겠다고 했을 때 다들 비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그의 희망을 지지해서 모인 성금이 5억달러에 이른다고 해요. 암에 걸리면 자신을 원망하고 주변을 원망하면서 모든 관계를 끊지요. 그러나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방법, 이를테면 암 환우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쓰일 성금을 모으는 재단을 만들고픈 것이 제 소망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국내 일주를 마치면 내년엔 7~8개월에 걸쳐 일본 전국 일주를 하고, 후년엔 미국, 그다음엔 호주와 유럽으로 갈 생각입니다. 하여튼 저는 침대에 누워 있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폐암 환자다'라고 외치면서 세계를 다닐 생각이에요. 희한한 게 '내가 폐암이다'라고 말하면 말할수록, 암이 주어(主語)에서 3인칭으로 바뀌더라고요. 그렇게 언젠가 암세포도 바람처럼 지나갈 거예요."



"[Why] [한현우의 커튼 콜] "난 말기암 환자다" 자전거 타고 소문내러 가는 남자"

조선일보, 2012년 4월 28일 [원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