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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8시뉴스 취재파일 "말기 암 환자의 전국 일주"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5. 29. 14:10




환자를 취재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어려워한다. 특히나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환자들을 만나는 일은 더욱더 그렇다. 취재에 앞서 환자 본인 마음이 떠오르고 그 가족들이 떠오른다.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어야하는 직업이지만, 그게 잘 안돼 힘들어했던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말기 암 환자, 그것도 아이를 낳는 산고보다도 몇 배는 더 큰 고통을 느낀다는 폐암 환자를 취재하기로 했을 때는 솔직히 망설여졌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일주에 나섰다고 하는데 매일매일 고통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전화 한 통으로 그런 걱정이 싹 가셨다. '이 분 정말 암 환자 맞아?' 오히려 이런 의구심이 앞설 정도였다. 만나고 싶어졌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내 자전거를 취재 차량에 싣고 만나러 갔다.


올해 환갑인 김선욱 씨. 그를 만난 건 임진각에서 지난 5월 1일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뒤 보름이 조금 지났을 때다. 보기 좋게 검게 그을린 얼굴과 짧게 자른 머리, 군살 없는 건강한 체구 이게 첫 인상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경기도 양평 국도변에 있는 한 청국장 식당에서 나와있는 음식들을 가리지 않고 그냥 맛있게 먹고 있던 모습이 첫 대면이었다. 테이블에 약 봉지만 없었다면 재작년 가을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환자라고는 전혀 알아챌 수가 없었다.


이틀을 그와 동행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밥도 같이 먹고, 술도 같이 한잔 했다. 미약하나마 그에게 힘을 주고 싶었고 위로를 주고 싶었는데 참 이상했다. 이틀을 그와 함께 보내고 난 뒤 힘을 받은 쪽은 오히려 나였다. 그를 지켜보고 그와 함께 대화를 하면서 내 자신이 '힐링'이 되고 있었다. 방송에 모든 걸 담으려고 노력했지만 150초 남짓한 시간으로 그를 다 소개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와 나눴던 대화들을 다시 옮겨보고 싶다.


Q :  암 판정은 언제 받으셨나?

A : 2010년 11월이죠.


Q : 그 때 기분이 어떠셨나?

A :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머릿 속이 백짓장 같았죠. 속이 팍 비는 것 같고,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원망도 생겼죠. 그런데 그리고 딱 떠오른 사람이 집사람이었어요.


Q : 왜 그런가요?

A : 집사람이 저하고 재혼을 했어요. 그런데 전 남편이 당뇨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집사람이 14년을 병수발을 했어요. 정말 정성을 다해서 매일같이 환자를 목욕시키고 뒷처리를 다해주고 그랬는데 저하고 쉽지않은 재혼이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제가 말기 암 환자 판정을 받았으니. 재혼한 지 딱 3년 만에 벌어진 일이죠. 저 사람 충격이 저보다는 몇십배는 더 클 것 같고. 집사람한테 가장 미안했죠. 처음에 제가 암 판정받고 눈물 흘리고 슬퍼했는데 그럴 때마다 집사람이 자꾸 약해지면 안된다고 내가 울면 자기도 약해진다고 나를 위로 해줬죠.


Q : 사모님이 정말 큰 힘이겠습니다.

A : 정말 큰 힘이죠. 이번 여행도 집사람 없었으면 정말 할 수가 없죠.


Q : 사모님, 남편께서 암 판정을 받으셨을 때는 어떠셨습니까?

A :(아내) 뭐라고 위로를 해야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암 환자한테 괜찮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정말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저도 울고 싶었지만, 저 사람 생각해서 정말 꾹 참았어요.


Q : 재혼한 지 3년 만에 다시 남편이 죽음에 가까이 가셨는데.

A : (아내) 참 저도 억울했죠. 왜 나한테만 계속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정말 저주받은 느낌이었어요. 제가 종교를 갖고 있거든요. 이런 말씀을 드리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종교에 대해서 갈등을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남편 앞에서 내색은 못했지만, 저도 정말 방황을 많이 했죠.


Q : 지금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데 계기는 뭔가요?

A :(남편) 원래는 은퇴하고 난 뒤에 자전거로 전국을 다니자고 약속을 했었어요. 그런데 암 때문에 먼저 하게 된 거죠.


Q : 누가 제안한 건가요?

A : 집사람이 먼저 말을 꺼냈어요. 제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굉장히 낙담하고 실망한 상태였거든요. 항암치료를 병실에 누워서 받다보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 때 집사람이 자전거 여행을 가자고 하더라고요.


Q : 그래도 항암치료를 끊고 나와서 전국일주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을텐데요.

A : 처음에는 망설였죠. 그런데 올 봄에 북한산을 올라갔어요. 등산을 하고 있는데 추운 날이지만 막 새싹이 돋아나고 있더라고요. 그 싹들이 참 새로왔죠. 아 저렇게 어렵지만 그래도 싹은 돋아나는구나. 그러면서 의지를 갖게 됐죠.


Q : 막상 자전거를 타다 보면 힘들지는 않나요?

A : 힘들죠. 특히 언덕길을 올라갈 때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게 들어요. 하지만, 그 고통을 참고 이겨내면 또 내리막이 나오거든요. 그 길을 내려가는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힘들어도 참고 갈 수 있는 거죠.


Q : 병실에 누워있을 때하고 비교하면 어떤가요?

A : 지금이 훨씬 좋아요. 그냥 말로 그러는게 아니라 정말 몸이 좋아져요. 좋아지고 있는게 느껴져요.


Q : 몸 속에 암이 있다는 게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A :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보면 페달을 밟는 데 집중하게 되고요. 또 주위 자연환경, 색깔 이런 것들에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암을 잊게 돼요. 그리고 저는 암은 감추거나 미안해 할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암도 감기처럼 몸에 왔다가 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냥 편하게 몸 속에 들어온 것을 받아들이고 같이 지내면 돼요. 떳떳하게 나는 암 환자라고 말을 하고 오늘 감기가 걸렸으니 술은 못 먹고 집에 가야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암이 걸렸으니 오늘은 술 못 먹겠다. 뭐 이렇게 편하게 말하고 지내는 게 좋다고 봐요. 이번 여행을 하게 된 것도 제가 암 환자라는 것을 널리 알려서 암 환자들이 암을 숨기지 않고 지낼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기 때문이에요.


Q : 보름을 자전거를 타셨는데 기억 나시는 일은 없으신가요?

A :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뒤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야외 캠핑을 해요. 그런데 숙소가 일정하지 않아요. 매일 50~60KM를 달리는데 마땅한 숙소가 없을 때도 있어요. 어제도 휴양림에 들러서 잘 예정이었는데 휴일이더라고요.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하는데 가까운 곳에는 없고해서 길 옆에 정자에 대충 텐트를 치고 잤죠. 매일매일 그렇게 먹고자고 했던 일들이 기억에 남아요.






Q : 6개월 동안 여행을 하실 계획인데 시간은 잘 가는 것 같은가요?

A : 처음에는 그 걱정을 했죠. 너무 길지 않나. 그런데 막상 그 시간 속에 들어와보니까 정말 빨리가요. 하루하루가 정말 빨라요. 아침에 눈떠서 밥먹고 자전거 타고 그리고 텐트치고 저녁먹고 이러면 하루가 금방 가요. 갈수록 더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누구나 다 고민을 갖고 있잖아요. 저도 고민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페달 하나하나 밟는데 집중을 하다보면 나한테 왔던 고민들이 뒤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에요. 나한테 닥친 고민들이 오래 머무르지 않고 금방 나가는 느낌이랄까.


Q : 사모님은 어떠신가요?

A : (부인)저도 처음에는 같이 여행을 하면서 매일매일 일기를 쓸려고 했더요. 큰 노트를 가져왔는데 아직 하루도 일기를 쓰지 못했어요. 쓸 시간이 없어요.


Q : 항암치료도 못 받는데 걱정되지 않나요?

A : (부인) 그런 걱정은 크게 없어요. 그런데 먹는 것은 좀 신경 쓰이죠. 아무래도 밖에서 해먹을 수 있는게 많지 안잖아요. 그래도 환자인데. 코펠로 해 줄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보니까 그게 제일 신경 쓰여요.


Q : 바깥 생활이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A :(부인) 정말 힘들어요. 하하. 이 사람이 이렇게 판을 크게 벌릴 줄은 몰랐죠 하하. 그런데 오늘은 어디서 잘 지 먹는 물은 어디서 가져올 지 빨래는 어떻게 할 지 이런 것 생각하다보면 불편한 것을 생각할 겨를이 많지 않아요. 참 그리고 주부 여러분들 씽크대에 정말 감사해 하셔야 합니다. 매일 부엌에 가시면 싱크대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시작하세요. 밖에 나와보니까 싱크대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하하.


Q : 부인은 재혼이지만 선생님은 55세에 결혼을 하셨는데요 늦게 결혼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시나요?

A : (남편) 이 사람을 만난 뒤로는 그 생각을 했죠. 왜 빨리 안 했을까. 제가 집에서는 정말 왕 대접을 받아요. 속옷까지 매일매일 다려주고 이불도 항상 풀먹여져 있고. 최고죠. 하하. 그런데 서로 성격이 강해서 젊어서 만났으면 절대로 같이 살지 못했을 거예요. 하하.


Q : 왜 늦게 결혼하셨나요?

A : 젊었을 때는 정말 바빴어요. 그리고 말년에는 힘들었고요. 사업이 잘됐던 30대는 좀 건방졌어요. 어느 여자나 다 될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어요. 하하. 어렸죠. 하지만 사업이 잘 안됐어요. 그래서 호주로 건너가서 살았죠. 호주에서는 정말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바닥까지 갔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다시 왔죠.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결혼을 안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시간이 갔어요.


Q : 시간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A : 글쎄 그렇죠. 이런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지면 좋을텐데. 그런데 지나간 세월은 돌이킬 수 없으니까. 이제부터 충실하게 하루하루 서로 쌓아가다보면 행복한 시간이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어요. 그래서인지 요새는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을 것 같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런 기대감이 매일매일 샘솟아요. 아침 5시면 그 기대감에 벌떡벌떡 일어나게 되고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또 준비하게 돼요.


Q : 이번 여행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A : 암 환자들이 암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자신감을 주는데 도움이 됐으면 해요. 암 환우들도 굉장히 쾌활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게 이 여행의 목적이에요.


Q : 어디까지 여행할 건가요?

A : 10월 31일에 한라산 정상을 갈 겁니다. 그리고 일본 중국도 자전거로 여행할 거예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 암 환자들과도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요.


그는 지금 26일째를 자전거로 달려 충청도를 지나고 있다. 암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진료도 받고 있지 않다. 암을 극복할 지 아니면 여행이 어디서 중단될 지 아무도 모른다. 부디 그와 부인의 아름다운 동행이 최종 목적지까지 무사히 끝났으면 하는 바람만 갖고 있을 뿐이다. 화이팅! 


by. 권영인 기자


"[취재파일] 말기 암 환자의 전국 일주"

SBS 뉴스, 2012년 5월 26일 [원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