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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바이크] 폐암 4기 김선욱 씨 부부가 꿈꾸는 착한 자전거 세계 여행


김선욱 씨는 건강했던 시절, 2012년 5월이 되면 그의 아내와 함께 자전거 세계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암 선고를 받으면서 그 계획은 미뤄졌고, 그는 다시 2014년 5월을 그가 세워 두었던 꿈을 실현시키는 날로 정해두고 있다.

editor 송해련 photo 이성규




Epilogue 

김선욱 씨와 박재란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자전거 세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김선욱 씨는 지난 해 11월 폐암 4기 선고를 받은 암환자이다. 4차례의 화학요법 치료 후 현재도 ‘이레사’라는 약을 투여하며 폐암과 싸우고 있다. 다행히도 그의 병은 많은 호전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김선욱 씨는 건강했던 시절, 2012년 5월이 되면 그의 아내와 함께 자전거 세계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암 선고를 받으면서 그 계획은 미뤄졌고, 그는 다시 2014년 5월을 그가 세워 두었던 꿈을 실현시키는 날로 정해두고 있다. 

이러한 그와의 인터뷰를 잡아두고 도시의 흐린 삶이 더 지루해졌다. 쳇 바퀴 도는 듯한 삶의 지루함이 더 크게 다가왔지만 막상 이 삶을 잠시 떠나볼까 하는 마음은 곧 다가올 마감과 지리한 장마를 핑계로 일상을 묵묵히 살게 할 뿐이었다. 

그러한 일상 속에서 김선욱 씨와 몇 번의 통화와 메일이 오고 갔다. 그가 강원도 가리왕산으로 캠핑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얼마 후 장때비를 5일간 흠뻑 맞고 돌아왔다는 소식이 메일 속에 적혀 있다. 이런 폭우 속의 캠핑이라니. 건조한 삶 속에서 번뜩 정신을 들게 했다. 

김선욱 씨와 그의 아내인 박재란 씨를 만났다. 스리랑카 대사관에서 노무관으로 일하고 있는 김선욱 씨는 일주일 간의 휴가동안 아내와 그리고 오래된 친구 부부와 캠핑을 떠났던 추억들을 먼저 들려주었다. 


“저희 부부가 캠핑을 시작한 것은 오래되었어요. 오랫동안 호주에서 생활을 했었는데 그때도 여행과 캠핑을 좋아했었거든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아내의 중학교 동창생인 부부와 함께 캠핑을 자주 떠나요. 이번 캠핑에서 빗소리 하나는 원 없이 듣고 온 것 같아요. 가리왕산의 푸르름과 장때비 속에서 심신이 세탁이 된 기분이랄까요. 비가 너무 와서 텐트가 아닌 민박을 택할까도 생각했지만 작은 텐트 속에서 빗소리만 듣고 있는 것도 너무 좋더라구요.” 


그렇게 지겨웠던 장맛비가 한 순간 낭만적인 빗소리로 변했다. 그래, 상상만하는 것으로도 좋았다. 

한참동안 캠핑 얘기가 오고 갔다. 끊이지 않고 나오는 여행의 에피소드 속에 막상 물어야 할 이야기들은 뒤로 미루어졌다. 그렇지만 김선욱 씨의 아내인 박재란 씨가 들려준 우리나라의 캠핑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두는 것이 좋을 것같다. 


“요즘 우리나라의 캠핑은 본질에서 벗어나 조금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다들 캠핑의 중심이 장비에 가있는 것 같은 느낌. 장비 지상주의에 빠진 캠퍼들은 캠핑장에서 이웃의 장비를 눈여겨보거나 탐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남의 장비에 관심이 많아요. 아마도 조그마한 텐트 하나에 불편을 감수하며 요리를 하고 있는 저희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거든요. 캠핑의 본질은 자연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장비는 캠핑을 즐기는 수단일 뿐, 캠핑의 목적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모든 것이 조금씩 부족하고, 약간 불편함이 따르는 것, 그것이 진짜 캠핑이에요. 장비의 허상에서 벗어나면 캠퍼들은 아주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좀 알아야 할 것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희 부부가 자전거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같아요. 60km로 가면 60가지를 못본다는 말도 있잖아요. 천천히, 그리고 자연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 느리게 살면서 꿈꾸는 행복은 저희가 자전거 세계 여행을 꿈꾸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이제 그는 자전거 세계여행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고 사람을 이해하는 '착한 여행' 을 꿈꾸고 있다. 할 수 있다면 공동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재능을 기부하고 재능을 나누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는 중이다.


"60km로 가면 60가지를 못본다는 말도 있잖아요. 천천히, 그리고 자연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 느리게 살면서 꿈꾸는 행복은 저희가 자전거 세계 여행을 꿈꾸는 이유죠."


 



Panic 

이제 본격적인 이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김선욱 씨는 인터뷰에 앞서 기자에게 보낸 편지 속에 몇 가지의 단어들을 적어 보냈다. 그리고 그 단어들을 따라 그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Panic’ 우리가 알고 있듯이 패닉은 생명이나 생활에 중대한 위해를 가져올 것으로 상정되는 상황에서 겪게 되는 공포, 공황상태다. 그의 인생에서 이 단어를 가장 첫 번 째로 놓은 것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작년 말 선고 받은 폐암 4기라는 병명 때문일 것이다. 

건강을 잃는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 있어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폐암 4기. 그때의 당혹감과 충격, 좌절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Angry & Depress

당혹감과 충격에서 벗어나니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화가 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암은 그를 낭떠러지로 내밀었다. 벼랑 끝에 서있던 그는 자꾸만 침잠과 화를 번복하며 수 없이 울었다. 그러나 화를 내고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모든 꿈이 꺼져버린 듯 주저앉아 울던 그를 건져 올린 것은 아내 박재란 씨였다. 그의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인 없었다는 그녀. 치료 내내 줄곧 그의 곁을 지켰고, 기도와 격려로 그를 다독였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때서야 인생이 다시 보이더라구요. 후회는 아니어도 반성은 하게 되는 것들. 나약한 저의 모습에서 다시 강해지고 싶은 용기, 고통의 삶에서 나 자신을 내팽개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저의 병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제가 가졌던 꿈들에 더 큰 희망의 옷을 입히게 되더군요. 더구나 제가 아프면서 우리 부부 사이는 부부 관계를 넘어 의리와 믿음이 두터워졌고 세상의 화살로부터 서로를 기꺼이 막아주는 사이가 된 것같아요.”



 


Loving, Collaboration & Sharing 

그가 가졌던 꿈, 은퇴 후 꿈꾸었던 자전거 세계 여행의 일정은 미루어졌지만 그의 병으로 인해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는 명소를 둘러보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식의 여행이 그리 긴 여운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동안의 세계 각 국 150 여 개에 달하는 도시들을 다니면서 이미 경험했다. 20 여 년이 넘는 호주 이민생활과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며 출장과 여행을 반복하며 수많은 여행을 다녔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진짜 여행’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지역의 문화와 사람을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여행, 그리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여행이라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것이죠. 나누는 여행, 그리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여행을 생각하면서 가능하다면 저의 자전거 여행이 암으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여행이 되면 좋을 것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그는 자전거 세계 여행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고 사람을 이해하는 ‘착한 여행’을 꿈꾸고 있다. 할 수 있다면 공동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재능을 기부하고 재능을 나누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는 중이다.


“저 혼자서 여행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과 교류를 하면서 서로의 희망을 공유하고 같이 활동을 할 수 있는 여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동역자들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물론 많은 시간이 지나서 있을 일이지만 차근 차근 준비를 하여 많은 사람이 참여를 하여 효율적이고 기쁨이 넘치는 여행이 되기를 희망하거든요. 가능하다면 랜스 암스트롱처럼 재단을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래서 저의 동역자를 찾기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투약하고 있는 약의 제약회사, 그리고 타임지 등 세계 잡지사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 편지에는 2014년 5월의 1일에 세계 자전거 투어를 시작할 예정이며 첫 번째 단계는 18 개월 동안 로스 앤젤레스와 뉴욕에서 시작될 예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여행의 목적은 그가 방문하는 국가, 도시 속에서 암 환자들을 만나 슬픔을 함께 공유하고 희망의 본질을 서로 이해하는 기회로 만들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현재로서는 저의 이런 생각들을 함께 해줄 사람들을 찾고 있어요. 작은 눈덩이를 굴렸을 때 커다란 눈덩이가 되는 그날을 생각하면서요. 홈페이지를 함께 만들어줄 웹디자이너나 영어와 한국어로 저의 이야기들을 전해줄 편집자, 혹은 홍보전문가나 꿈의 이야기들을 전략적으로 세계에 전해줄 전략가, 자원봉사팀 등 저의 이야기와 꿈에 동참해줄 사람들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비롯해 각종 쇼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유행인 지금 네트워크 상에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을 넘어 정작 진정으로 중요한 네트워킹의 핵심은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이러한 쇼셜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과 만나보려구요.”


모든 꿈을 꺼버린 듯 주저않아 울던 그를 건져 올린 것은 아내 박재란 씨였다. 그의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는 그녀. 치료 내내 줄곧 그의 곁을 지켰고, 기도와 격려로 그를 다독였다.





Living & Leaving 

그는 4년 후 더 건강을 되찾을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의 생각에 동참하는 많은 사람들의 격려가 암을 근절하고 극복하는 사람들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며 결국 그 행복은 각자의 본인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인생의 목표가 자신에게만 있다면 성공은 그리 먼 이야기 아닐 것같아요. 하지만 그 목표가 세상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멈춤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장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가 있으니까요. 고초의 세월 끝에 깨달은 사람만이 아는 더 빛나는 희망, 그것을 자전거를 통해 여행을 통해 전하고 싶어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삶이 부패하는 것은 매일매일 습관처럼 살아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꿈을 버리지 않는 김선욱 씨의 마음 속 ‘청년’은 58세라는 나이가, 폐암 4기의 병명이 고난의 시간에도 매몰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저는 긍정의 힘을 믿어요. 저의 자전거 여행을 통해 새로운 긍정의 힘이 탄생한다는 꿈 멋지지 않아요? 이번 여행에서 아내가 그러더군요.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떠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에 있다고. 아마도 2014년에 시작될 아내와의 여행은 우리 인생에서 여행이 일상이 될 몇 년 간의 여행이 될테지만 다시 돌아오게 되겠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안도할 수 있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 세계 여행에 앞서 아내와 국내 자전거 여행을 하며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게 될 겁니다.”


누구나 다 죽음을 맞이할 테지만 모두가 죽음마저 긍적적으로 수긍하는 순간을 맞지는 않는다. 그러나 김선욱 씨는 죽음 앞에서 급커브를 틀어 희망으로 내달렸고, 자전거로 세계를 달려야 할 이유를 찾아냈다. 

마지막으로 그가 기자에게 보내온 그리고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 보내고 있을 그의 편지를 덧붙인다. 김선욱 씨의 이야기에 당신이 희망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면 편지 말미의 연락처로 연락하면 된다.



"폐암 4기 김선욱 씨 부부가 꿈꾸는 착한 자전거 세계 여행"

월간 더바이크, 2011년 8월호 [원문 바로가기]